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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건설 강국의 고질적 병폐 ‘하도급 갑질’, 업계 퇴행 끊어내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2.06

61회

▲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에서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매일건설신문

 

[매일건설신문 정두현 기자] 우리나라의 건설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건설 강국이라는 영예의 수식어 뒤에는 심각한 모순이 엄존한다. 바로 원청사의 고질적 ‘하도급 갑질’ 행태다.

 

국내 건설현장의 하도급 갑질 병폐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건설업계는 최근 고금리, 원자재비 인상, 미분양 누적 등 건설 악재가 잇따르면서 침체일로를 걷고 있지만, 오랜 기간 수직적 관계가 고착화된 건설 원·하도급 생태계에선 공사대금 미지급 등 불공정 거래 이슈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원·하청사 간 공사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분쟁조정 건수가 대다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3년간 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원·하도급 분쟁조정 총 1129건 중 원청사의 대금 체불로 인한 분쟁이 약 70%에 해당하는 78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설계변경에 따른 분쟁(9.7%), 부당 대금 책정(4.4%), 부당 대금 감액(3.0%), 서면계약서 미발급(2.7%) 등이 주요 분쟁조정 신청 사유로 집계됐다.

 

분쟁조정 대상에 오른 원청사의 대금 체불 사유를 살펴보면 ▲원사업자 경영 악화 ▲대금 정산 분쟁(추가공사, 계약 중도 해지 등)이 주를 이룬다. 특히 공사대금 정산 단계에서 원도급사가 하도급사의 추가공사비를 정산에서 제외하거나 대폭 감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공사대금 정산 등을 놓고 원·하도급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거나 갈등이 격화할 경우 원청사의 일방적 계약 해지라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이와 함께 시공상 하자가 발견된 경우에도 공사대금이 미지급된 사례도 있었다. 

 

조정원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공사대금 미지급 신청금액도 무려 3,868억 원에 달한다. 그 중 조정원의 분쟁조정으로 하도급사가 지급받은 공사대금은 총 신청금의 19% 수준인 737억 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원청사의 공사대금 체불 등 각종 불공정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주로 시공 하도급을 맡는 전문건설사들은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이러한 불공정 거래에 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한다.

 

서울 소재의 한 전문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매일건설신문>과의 통화에서 “(원청사의 하도급 갑질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요즘 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공생하는 계약관계가 성립이 되어야 하는데, 대금 체불은 물론이고 페이퍼(하도급 계약서)를 작성할 때 이미 하청사에 불리한 독소 특약을 넣는 일도 다반사”라며 “그야말로 약육강식이다. 하청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살아남기 위해 대금 후려치기로 공사 수주에 나서다 보니 재정적으로 열악한데, (원청사가) 공사대금까지 체불하면 인건비, 재료비 빼면 남는 게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나아가 전문건설업계에 따르면 시공 단계에서 자재·장비 추가 투입 등으로 발생한 비용을 원청사가 지급하지 않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제반 비용을 하도급사가 자체 처리해야 한다는 원청사의 논리라는 게 전문건설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와 함께 하청사들 사이에선 업계에서 소외될까 분쟁조정을 신청하기도 눈치가 보인다는 불만도 나온다. 경기권의 한 전문건설업체 임원은 “공사비 체납이나 설계변경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방적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대금 감액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면서 “대부분 ‘(원청사 요구에) 비협조적이면 이 업계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식으로 대놓고 말하는 원청사 직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분쟁조정에 나서기 어려운 것은 이 쪽에서 한 번 찍히면 공사 수주가 어려워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하도급 전문건설사에 대한 원청사의 행태는 건설분야에 만연한 수직적 문화의 단면에 불과하다. 건설업에서 횡행하는 갑질로 인한 피해는 비단 전문건설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원청사 역시 대기업 발주사의 갑질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 10월 KT와 쌍용건설 사이에 물가변동 배제 특약 논란이 일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발주사→원도급사→하도급사로 종속 관계가 이어지는 악순환인 셈이다.   

 

문제는 하도급 갑질의 여파가 단순히 대급 미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위 사업자의 공사비 미지급으로 건설현장의 여건은 악화되고, 시공품질이나 안전관리도 뒷전으로 밀리게 될 수밖에 없어 건설분야의 총체적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3년차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관련 현행법과 제도 역시 건설업계에 만연한 대금 체불과 같은 음성적 관행을 끊어낼 수 있도록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두현 기자

원문출처 : [매일건설신문][2023-12-05 16:26:00] http://mcnews.co.kr/sub_read.html?uid=79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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